그 지갑 닫아요, 요리 초보가 꼭 사고야 마는 불필요한 조리도구 8
처음엔 재미있다. 몇 번은 꺼내어 사용한다. 그러다 그 빈도가 눈에 띄게 줄어든다. 음식은 식탁에 오르지 않고 사놓은 조리도구는 찬장 깊숙이 자취를 감춘다.
요리를 시작하면 칼부터 제대로 갖춰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여러 종류가 한 번에 들어 있는 세트를 산다. 하지만 실제로 매일 쓰는 건 늘 식칼 하나다. 나머지는 칼꽂이에 꽂힌 채 먼지가 쌓이거나 녹슨 채로 존재하기만 한다.
파스타 집게나 생선 전용 뒤집개처럼 역할이 분명한 도구들이 눈에 들어온다. 요리가 그럴듯해 보일 것 같아서다. 현실에서는 기본 집게 하나로 대부분 해결된다. 설거지할 도구만 늘어날 뿐.
언젠가는 베이킹도 해볼 것 같아 틀과 몰드를 사둔다. 연말에 쓰기 좋은 앙증맞은 쿠키틀은 정말 참을 수 없다. 그때는 주말의 나를 상상한다. 그런데 오븐을 자주 켜지 않는다면 이 도구들은 수납장 안에서 가장 오래 머무른다.
레시피를 보면 정확함이 중요해 보인다. 그래서 전자저울부터 계량컵, 계량스푼까지 모두 갖춘다. 몇 번 요리를 해보면 알게 된다. 눈대중이 생각보다 훨씬 빠르고 편하다는 걸.
에어프라이어를 샀다면 활용도도 높이고 싶어진다. 전용 팬과 트레이를 함께 담는다. 하지만 자주 만드는 메뉴는 늘 비슷하다. 기본 바스켓 하나면 충분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굳이 하나를 더한다면 종이 호일 정도?
요리를 잘하려면 정리부터 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밀폐용기와 정리 도구를 종류별로 산다. 요리를 좀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손이 가는 건 늘 같은 몇 개다. 장갑이나 지퍼백도 마찬가지다. 없으면 불안해서 대용량으로, 종류도 다양하게 고른다. 막상 쓰다 보면 특정 사이즈만 계속 쓰게 된다. 나머지는 끝까지 남는다. 특히 대형사이즈.
수비드 머신이나 와플메이커는 삶을 바꿀 것처럼 보인다. 요리가 취미가 될 것 같아서다. 그런데 준비와 정리가 번거로워지면 손은 점점 멀어진다. 은근 부피가 커 주방 한편에서 자리만 차지하게 된다.
홈카페를 꿈꾸며 쉐이커나 전용 머신을 산다. 그 순간만큼은 완벽하다. 하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면 블렌더 하나면 충분하다는 걸 금방 알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