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 바드글리의 인생을 바꾼 책 6권
넷플릭스 스릴러 드라마 <너의 모든 것>의 조 골드버그는 애서가 기질이 있는 인물입니다. 조를 연기하는 배우 펜 바드글리 역시 실제로 책에 조예가 깊죠. 그렇지만 바드글리는 살인을 정당화하기 위해 문학을 이용하는 드라마 속 조와는 다릅니다. 바드글리에게 책이란 세상과 사람들을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존재입니다. 그가 홈스쿨링을 하던 배우 지망생 시절에는 특히 더 그랬죠. 바드글리는 최근 팟캐스트 ‘팟크러시드(Podcrushed)’를 함께 진행하는 소피 안사리, 나바 카벨린과 함께 재치 있고 사랑스러운 신간 <크러시모어: 사랑, 상실, 성장에 관한 에세이(Crushmore: Essays on Love, Loss, and Coming-of-Age, 크러시모어)>를 냈습니다. 여기에도 그의 홈스쿨링 시절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언제나 독서를 통해 가장 많이 배웠어요.” 바드글리는 <보그> 줌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서른아홉 살인 그는 가슴에 아이를 안고 흔들며 브루클린에 사는 명문고 학생을 연기한 드라마 <가십걸>의 허구 세계와는 전혀 달랐던, 평범과는 거리가 멀었던 자신의 성장기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크러시모어> 출간을 기념하며, 바드글리의 인생을 바꾸고, 작가로서 쓰는 글에도 영향을 준 책 여섯 권을 그가 직접 소개합니다.
펜 바드글리의 인생 도서 6권
#1. 클라이브 바커의 <시간의 도둑>
아홉 살인가 열 살 때 분명히 이 책을 읽었어요. 제가 평생 읽은 책 중에서도 가장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책이에요.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제가 어떤 걸 읽었는지, 어떤 걸 좋아했는지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제 기억으로는 이 책이 제가 제일 처음으로 접한 미스터리 장르였어요. 충격과 경이라는 감정을 이 책을 통해 처음 느꼈죠. 아마 이게 제가 처음 읽은 공포물일 거예요. <시간의 도둑>은 어린이를 위한 일종의 호러 소설이거든요. 제 기억에는 그렇게 남아 있지 않지만요. 저는 그저 이상하고 강렬한 책이었다고 기억해요. 이 책에 완전히 매료됐죠.
재밌는 건, 그때 이 책을 읽으면서 약간 무서웠던 기억도 난다는 거예요. 원래 책이나 영상을 보면서 무서움을 느끼는 걸 즐기는 편이 아니거든요. 공포물의 서스펜스를 좋아하는 취향이 결코 아니죠. 그런데도 이 책은 아주 많은 영향을 준 것 같아요. 부정적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이 책 덕분에 실존적인 공포를 처음 느껴본 것 같아요.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요. 공포물의 역할이 그런 거잖아요? 이 책은 그 역할을 아주 탁월하게 해내죠.
#2. 빌 워터슨의 <캘빈과 홉스>
어젯밤에 다섯 살 난 우리 아이가 15년 동안 제가 갖고 있던 <캘빈과 홉스> 전집을 전부 가져와서 읽어달라고 하더라고요. 새벽 4시 반에요. 요즘 쌍둥이들 때문에 얘가 밤마다 정신이 없거든요. 아무튼 오늘 아침에 그 책을 읽었는데, 덕분에 ‘이 책이 나에게 큰 인상을 남긴 최초의 책이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정말 훌륭한 책이에요. 제가 지적인 유머를 처음으로 접한 작품이죠. <캘빈과 홉스>는 그런 책이에요. 지혜롭고 기발해요. 영리하고요.
캘빈은 버릇없는 불경한 캐릭터지만, 빌 워터슨이 자연의 세계를 묘사하는 방식은 아주 경건하고, 영적이면서, 생기가 넘쳐요. 덕분에 만화 속 세계에 완전히 다른 차원이 더해지죠. 제가 아버지가 되고 나서 보니 빌 워터슨은 어린 시절을 정말 정확하고 현명하게 그려내는 것 같아요. 전에는 생각지 못한 부분인데, 이번에 책을 다시 읽으면서 캘빈에게 아주 외로운 면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캘빈은 놀라운 상상력을 지녔고 만화도 그런 부분을 보여주기 때문에 캘빈의 외로움은 완전히 숨겨져 있어요. 하지만 홉스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친구예요. 캘빈의 주변 사람들도 캘빈을 꽤 사납게 대하죠. 물론 그런 행동이 캘빈을 돌보기 위한 노력에서 나온 것이지만요. 캘빈이 부모에게 다정하게 굴 때면 제 마음도 녹아버려요.
#3. 아담 호크쉴드의 <레오폴드왕의 유령>
BP의 원유 유출 사고가 일어나기 1년 전에 이 책을 읽었으니, 2009년이었겠군요. 아마 그때 <가십걸> 시즌 2를 촬영 중이었을 거예요. 저에게 그 시대는 정치적으로 정의되는 시대였어요. 존 스튜어트가 <데일리 쇼>의 황금기를 이끌던 시대였죠. 오바마가 대통령일 때였지만, 저에게는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내면에서 정치적인 성장을 겪는 시기엔 누구나 엄청한 환멸을 느끼는 것 같아요. 저는 변화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 책을 읽으면서 콩고, 지금은 콩고민주공화국인 그곳에서 벌어지는 노예무역이라는 특수한 악의 계보를 고려하게 됐어요. 그리고 우리에게는 허구의 이야기를 읽을 여유가 없다고 여겼죠. 이 책 덕분에 인종차별이나 노예제도 자체에 대한 깨달음을 처음 얻은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 세계가 그것들을 광범위한 시스템으로 만들어서, 그 시스템으로부터 이익을 얻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눈을 뜨게 된 것 같아요. 그런 시스템에 진심으로 대항하는 사람은 전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죠. 이 책을 읽은 후로는 어떤 소설도 그만큼 강렬하게 다가오지 않았고, 진실한 울림도 그만큼 느껴지지 않았어요. 저는 언제나 진실함이 느껴지고 공감된다면 그것으로 훌륭하다고 여겼어요. 하지만 소설을 읽고 싶어도 심오한 내용을 다루는 논픽션만큼 강렬하게 다가오는 소설을 못 찾겠더라고요. 이 책은 저에게 정치적인 영역에서 시작해 그다음에는 도덕적인 영역으로, 그런 다음에는 영적인 영역으로 이어진 탐구의 시기를 열어준 책이에요.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저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바하이교 신자가 된 것도 그 과정의 일부였죠.
이 한 권의 책이 저에게 미친 영향을 과장해서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당시 제가 이미 지금의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겠죠. 책을 읽은 다음 해에 BP의 원유 유출 사고가 일어났어요. 그다음 해에는 아랍의 봄이 있었고, 이어서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운동이 있었어요. 그리고 몇 년 후에는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이 일어났죠. 저는 마침 많은 영향을 받고 변화를 겪는 청년기에 이 모든 것을 경험한 겁니다.
#4. 바하올라의 <숨겨진 말씀>
바하올라는 이 책의 서문에 이렇게 썼습니다. “이 글은 영광의 영역에서 내려와, 힘과 기운의 언어로 일렀으며, 옛 예언자들에게 계시된 것이니라. 우리는 그 내적 본질을 취해 간결의 옷을 입혔다…”라고요. 과학이 현실 세계의 물리적 진실, 법칙, 원칙, 역학을 밝혀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처럼, 이 책은 진정한 종교의 본질을 응축하고 정제함으로써 인간 내면의 원칙과 역학을 드러내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그런 게 바로 종교의 궁극적인 목적이에요. 현대의 조직화된 종교는 보통 사정이 다르죠.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종교의 목적을 성공적으로, 또 효과적으로 달성하는 책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바하이 신자가 아니었어요. 그러다 2015년 초에 세 달 정도 이 책을 꾸준히 읽게 됐죠. 사실 이 책은 얇아서 하루면 다 읽을 수 있어요. 그렇지만 안에 든 내용은 놀라울 만큼 밀도가 높아요. 몇 단어만 가지고도 몇 달 동안, 원한다면 1년 동안이라도 명상을 할 수 있죠. 실제로 제가 가끔 그랬어요. 이 책을 매일 읽곤 했죠. 읽는 동안 바하이 신자가 되겠다고 의식적으로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그렇지만 결국 저를 바하이교로 이끈 것 중 하나는 이 책이었어요.
#5. 제임스 볼드윈의 <단지 흑인이라서, 다른 이유는 없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이 책에 대해 토론한다면 제임스 볼드윈이 백인 독자를 염두에 두고 책을 썼다는 의견이 나올지 궁금합니다. 저는 그가 분명 그랬을 거라고 여기거든요. 볼드윈은 흑인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걸 가장 잘 들어야 할 사람들이 바로 백인들이니까요. 볼드윈이 그 이야기를 매우 효과적으로 전달해 거의 종교적인 느낌마저 들 정도예요. 그는 너무 인간적인 사람이었어요. 너무 인간적이라는 건, 최고의 칭찬을 받아 마땅한 덕목이죠.
인종이 사회적으로 구성된 개념이라는 생각은 볼드윈이 살던 시대에나 제가 이 책을 처음 읽던 시대에는 통용되지 않는 생각이었어요. 이 책을 읽은 게 아주 오래전이기는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실제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된 개념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어요. 돌아보면 그건 인간을 보는 시각 중 매우 불편한 시각이죠. 너무 피상적이니까요. 이건 세계적으로도 몹시 중요한 문제지만, 특히 미국에는 어느 때보다도 더 중요한 문제예요. 저에게 볼드윈은 완전히 독특하고, 희귀하고, 특별한 위치에 있는 작가입니다. 아주 힘 있는 작가죠.
#6. 옥타비아 버틀러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
이 책은 제가 소설에 관심이 없던 거의 20년 가까운 기간 중에 유일하게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소설이에요. 제가 소설을 잘 읽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소설 속에서는 작가가 신이 된다는 것, 그러니까 책 속 현실과 세계를 만드는 신이 된다는 것인 것 같아요. 책 속 세계는 반드시 현실의 진리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작가가 이해하는 것에 따라 움직이잖아요. 아주 훌륭한 소설은 독자를 소설이 의도한 대로 휘어잡을 수 있고, 그러면 독자는 그 소설을 통해 실제로 존재하는 보편적인 진실을 보고 느낄 수 있죠. 하지만 저는 종종 ‘이건 그냥 작가가 사람에 대해 가진 생각일 뿐인데, 내가 왜 거기에 관심을 가져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작가들은 뛰어난 재능을 지녔지만 정말 무지할 수도 있거든요. 뛰어난 재능을 지녔다는 게 세상을 진실한 시각으로 볼 줄 안다는 뜻은 아니니까요. 그저 매력적이거나 유혹적이라는 의미일 수 있죠. 저는 이 책이 진실에 기반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을 갖고 있다고 느꼈어요. 그건 작가가 천재적이기 때문이지만, 흑인 여성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건 정말 중요한 부분이에요. 많은 초현실적 배경의 소설이나 판타지물에서는 백인 남성이 모든 걸 상상하거든요. 이 작품은 진실에 기반을 두고 있어요. 또 제가 기억하는 작품 중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세계관을 구축했죠.
미래를 내다보는 시각 중에는 인류를 한 줄기 희망조차 없이, 지극히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 로렌 올라미나는 정말 끔찍하게 붕괴되고 있는 세상에서도 신앙과 이상에 근거한 근원적인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인물이에요.
시간의 도둑클라이브 바커
(2002, 황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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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북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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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무우수)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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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이출판재단)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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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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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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