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에서 만난 GCDS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줄리아노 칼자의 ‘와우!’
지난 10년 동안 줄리아노 칼자는 자신이 사랑한 것들로 GCDS라는 세계를 만들어왔다. 그리고 지난 2월 27일, 밀라노에서 그 본능적 애정, 팝 컬처와 자유 그리고 순수한 즐거움을 다시 펼쳐 보였다.
마치 파티 같았다. 10주년 쇼를 하루 앞둔 밀라노 GCDS 쇼룸은 긴장감보다는 설렘과 활기가 넘쳤다. 한창 피팅 중인 모델들 사이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줄리아노 칼자(Giuliano Calza)가 네온 그린색 가방이 더 어울릴지, 검은색 가방이 나을지 스타일리스트와 논의 중이었다. 베티 붑 그리고 헬로 키티와 협업한 옷들, 드라큘라의 송곳니를 위트 있게 적용한 모르소(Morso) 슈즈, 강렬한 색과 패턴의 도발적 디자인. GCDS 2026 S/S 컬렉션은 내가 기억하는 GCDS의 모습 그대로였다. 지난 10년간 브랜드가 쌓아온 세계를 압축해 생동감을 불어넣은 풍경 앞에서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일종의 사탕 가게에 들어온 느낌마저 들었다.
분명 줄리아노 칼자는 장난스럽고, 팝 컬처를 사랑하는 디자이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정치학과 경제학을 공부했고, 여러 언어를 구사하며, 아시아를 비롯해 다양한 문화를 집착적으로 수집하면서 ‘지금 일어나는 일’에 대해 누구보다 높은 관심과 예리한 감각을 지니고 있다. 독서를 즐기고 사유하는 시간도 좋아한다. 이런 GCDS의 이미지와는 또 다른 면면이 오히려 GCDS를 완성하는 요소다. 줄리아노 칼자는 자신이 현실적이기 때문에,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로, 쉽고 가볍게 즐길 수 있는 패션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당신이 컬렉션을 보고 ‘와우’라고 느꼈던 기분을 사람들에게 전달해주고 싶어요. 한국으로 돌아가서 ‘나 옷 구경만 잔뜩 했어’가 아니라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말하면 좋겠어요. 저는 그런 방식으로 창의적이고 싶어요.”
쇼 하루 전인데, 기분이 어떤가? GCDS 10주년을 기념하는 쇼다.
정말 행복하다. 이제까지 진행한 쇼 중에서 가장 ‘진정한 축제’처럼 느껴질 정도다. 10년 동안 살아남았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 아닌가. 브랜드를 사랑해주는 팬들이 있음을 실감할 수 있는 기회다. 결과에 대해 걱정하기보다는 그저 행복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뿐이다.
하지만 이번에 보여줄 옷은 2026 F/W가 아니라 2026 S/S 컬렉션이다. ‘See Now, Buy Now’ 방식을 적용한 이유가 있나?
GCDS처럼 크지 않은 규모의 하우스에서는 빠르게 반응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GCDS는 현대적인 브랜드고, 우리를 좋아하는 새로운 세대는 런웨이에서 본 것을 바로 갖고 싶어 한다. 그동안 패션은 보고, 기다리면서 환상을 즐기는 방식이었지만 시대가 변했다. 너무 오래 기다리면 어느 순간 흥미를 잃거나 더 이상 필요 없다고 느낄 때가 있지 않나. 사실 패션은 ‘필요성’보다는 소유욕을 자극하는 지점을 만드는 것이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GCDS는 ‘젊음’이 일종의 철학 같다.
젊음을 유지하는 것이 브랜드의 정신이다. 나 역시 나이와 무관하게 정신적으로 젊게 살고 싶고, 팝 컬처에 집착한다. 케이팝이나 <케이팝 데몬 헌터스>도 정말 좋아한다. 지금 시대가 열광하는 것을 계속 찾고, 그 문화에 매료된다. 스무 살 때, 중국에서 4년간 살았던 경험이 관점을 바꿔놓았다. 모든 것이 미래적이라고 느꼈다. 기술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소비하는 방식, 심지어 제품 하나까지도. 지금 아시아에서는 당연하게 사용하는 현대적 제품들을 유럽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패션도 마찬가지다. 패션 역시 새로운, 지금의 문화와 함께 끊임없이 재창조되어야 한다.
2025 S/S 컬렉션은 정원에 핀 분홍색 장미 한 송이에서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 게 무척 인상적이었다. 낭만적이기도 하고. 이번 컬렉션의 영감은 무엇이었나?
GCDS 그 자체. ‘지난 10년간 내가 무엇을 수집해왔나?’라는 고민에서 출발했다. 그 안에는 자유와 브랜드의 독특한 지점이 있었고, 그 본질적인 정체성을 가져와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과정이었다.
베티 붑, 헬로 키티 그리고 발렌티노 로시(Valentino Rossi)와 함께한 세 개의 캡슐 컬렉션을 제안한다. 예상 밖의 협업은 발렌티노 로시다.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모터사이클 레이서, 남성성의 상징 아닌가. 그동안 GCDS는 젠더를 유동적으로 다뤄왔는데, 그와의 캡슐 컬렉션에서는 남성성을 어떻게 재해석했나?
그 가치를 그대로 유지했다. 발렌티노 로시의 이름이 새겨진 티셔츠에 헬로 키티 팬츠를 매치하는 식으로 설득력을 부여했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남자다워야 한다거나 여자다워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지만, 지금은 성 정체성의 층위가 아주 다양하지 않나. 지금 세대와 다음 세대는 모든 것에 열려 있다. 나는 진심으로 모든 사람들의 선택을 존중한다. 누구도 비판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그래서 패션을 정말 좋아한다. 패션에는 자신만의 비전과 스타일이 있어야 하니까. 독특하다는 건 특별하다는 뜻이고. 그저 스스로 선택할 뿐이다.
진짜 자기 자신다운 삶, 그런 삶을 사는 인물들이 곧 브랜드의 정체성이고 뮤즈라는 건가?
정확하다. 특히 이번 컬렉션은 지난 10년 동안 GCDS를 사랑한, 그리고 GCDS가 사랑한 캐릭터들의 집합이다. 래퍼, 밈 아이콘, 잇 걸, 수트 혹은 클래식한 스타일을 즐기는 인물들을 보게 될 거다. 내가 10년 동안 매료됐던 모든 것을.
이번 쇼의 세트는 이탈리아 장인들이 제작했다. 나폴리 출신 디자이너가 만든 브랜드의 10주년, 발렌티노 로시까지, 이 모든 이탈리아적인 요소를 굉장히 사적으로 해석했다. ‘이탈리아’ 하면 처음 떠오르는 이미지는 아니라는 거다.
팝 컬처가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집을 떠나 살면, 고향에 대한 애정이 더욱 각별해진다. 이탈리아만의 아름다움이 더욱 구체적으로 보인다고 할까. 이걸 현대적이고 화려하게 기념하고 싶었다. 우리처럼 팝 컬처의 아이디어와 젊음을 가져와서 자신만의 것으로 만드는 브랜드는 많지 않다.
이번 컬렉션에서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특별한 피스가 있었나? 잠깐 멈춰 서서 “와, 이거 정말 좋다”라고 감탄했던, 이번 컬렉션을 관통하는 옷 말이다.
분홍색 폴카 도트 드레스. 하지만 단순히 옷 때문만은 아니다. 친구이기도 한 모델 리비아 누네스 마르케스(Livia Nunes Marques)가 그 드레스를 입고 움직였을 때, 옷이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내가 잘 아는 사람, 자신만의 이야기를 지닌 누군가가, 내 상상 속에서 태어난 옷을 입은 모습을 보는 건 모든 것을 바꿔놓는다. 나는 늘 폴카 도트를 좋아했다. 폴카 도트는 어딘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어린아이 같은 느낌이 있지 않나. 거기에 투명한 소재와 란제리 구조가 더해지면서 훨씬 감정적인 옷이 되었다. 연약한 동시에 강한 느낌이라고 할까. 그리고 리비아가 그 옷을 입는 순간, 비로소 현실이 된 거다.
한동안 조금 더 정제되고 조용한 스타일을 선보였다. 하지만 2026 S/S 컬렉션은 본래의 GCDS로 돌아온 느낌이다.
10주년이기도 하고, GCDS는 즐거움과 재미라는 가치를 추구하니까. 나도 진지해질 수 있음을 스스로 증명하고 싶은 적도 있었지만, 브랜드 자체가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 본다. 내가 성장하더라도 브랜드는 본연의 모습에 충실해야 한다. 인간 줄리아노는 또 다른 문제다.
가끔은 창작자와 작업물을 분리할 필요가 있다는 뜻인가?
맞다. 물론 GCDS는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반영이고, 나의 연장선이다. 완전히 분리된 무엇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내게는 또 다른 모습도 있다. 사람들에게 항상 말한다. 내가 만약 다른 작업을 한다면 전혀 다른 분위기일 거라고. 이를테면 알렉산더 맥퀸 같은 스타일로 말이다. 어둡고 공포스러운 고딕 분위기를 정말 좋아한다.
그동안 미디어에서 ‘언젠가는 철이 들겠지’라는 평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왜 ‘성장한다’는 것이 진지하거나 본능을 잃는 것을 의미하는지 항상 궁금했다. 반대로, 나는 상상력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성숙함이라고 여긴다. 오히려 그런 평 때문에, 내 세계를 고수하고 싶었다. 현실과 동떨어진, 지나치게 지적이고 복잡한 옷을 만드는 또 하나의 브랜드가 되고 싶지 않았다. 언제나 GCDS가 지금 ‘살아 있는’ 브랜드가 되기를 원한다.
당신에게 ‘성장’이란 어떤 의미인가?
더 솔직해지는 것. 처음에는 무언가를 증명하려고 애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이 누구인지 투명하게 드러내는 일임을 깨닫게 된다. 내게 성장이란, 정체성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나’를 더 잘 이해하는 과정이다.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모순까지 말이다.
디자인을 하면서, ‘이건 나만 할 수 있다’라고 느낄 때가 있나?
무언가를 재창조할 때. 이를테면 ‘모르소(Morso)’ 슈즈를 만들었을 때. 당시 드라큘라에 푹 빠져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이걸 현대적으로 만들고 싶다. 지금의 패션, 새로운 시대로 가져오고 싶다’고 마음먹었고, 그걸 슈즈로 형상화한 거다. 정말 행복했다. 신발이라는 아주 흔한 아이템에 나만의 아이디어를 입혔으니까.
매우 GCDS다운 방식이었다.
매우 GCDS다운! 바로 그런 게 내가 추구하는 지점이다. 누군가 “이거 정말 GCDS답다”고 말해주면 정말 기분이 좋다.
GCDS는 전형적인 미학에서 벗어나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상한 것들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쪽에 가깝다.
항상 어딘가 조금 어긋난 것들에 끌렸다. 불완전하거나 제자리에 있지 않은 것들. 백스테이지에서 급하게 투명 테이프로 수선해놓은 드레스 같은 것. 사실 그러면 안 되지만, 이상할 만큼 섬세하고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그 순간 아름다움을 만드는 건 완벽함이 아님을 깨달았다. 오히려 취약함이야말로 아름다움을 만드는 요소다.
‘GCDS’라고 하면 팝 컬처, 엔터테인먼트, 어른을 위한 장난감 같은 단어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당신이 정의하는 GCDS는 어떤 브랜드인가?
즐겁고, 대담하며, 재미있고, 동시에 예상치 못한 우아함이 있는 브랜드. 너무 진지하거나 너무 장난스럽기만 한 게 아닌, 두 세계의 장점을 모두 갖춘 세계.
지난 10년 동안 무엇이 변했나?
막 디자이너가 되었을 때는 패션계의 인정을 받으려 노력했다. 타인을 위해 디자인하고 외부의 시선을 신경 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내가 좋아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번 컬렉션을 준비하면서 평온함을 느꼈다. 전에는 ‘너무 과한가?’, ‘너무 미친 짓일까?’ 고민할 때도 있었는데, 올해 처음으로 완전한 자신감이 생겼다. 사람들이 좋아하면 정말 행복한 일이고, 만약 싫어한다면 내 알 바 아니지, 하는 마음이었다(웃음).
10년 전의 줄리아노 칼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멈추지 말고, 포기하지 말 것. 뻔한 이야기 같지만 사람들은 꿈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리니까.
10년 뒤 당신에게는?
같은 일, 그러니까 창작을 계속하면 좋겠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계속 무언가를 배우고 있기를.
